[콘텐츠기획] 삐악이 편집자를 위한 출판기획 매뉴얼
이래저래 책을 만들어 온 지 벌써 4년 차가 되었다. 10년 차 20년 차 선배들이 파다한 업계에서 이제 뭔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말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연차이기도 하고, 헉헉대며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야만) 하는 연차이기도 하다. 출판 기획이라고 하니 너무 거창한 이야기(aka 편집자란 무엇인가)나 SBI 수업에나 나올법한 원론적인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프로세스별로 나는 어떻게 이 과정을 해나가고 있고, 어떤 실수를 저지르며 일을 하는지 작성하려 노력했다.
1. 기획하라고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다음 주에 기획 회의가 있으니 기획안을 작성해오라고 한다. 기획안의 칸을 채우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데, 당장 기획을 하라니 초록색 검색창만 멍하니 바라보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 기획의 출발점으로 삼을 방법을 소개한다.
관심사부터 출발한다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팀(회사) 내에서 정해진 분야가 있거나 없거나 어쨌든 나의 관심사와 내가 보고 듣고 알고 있는 것들로부터 기획을 시작해본다. 관심사는 특정한 키워드(여성, 노동)도 될 수 있고, 도서 분야(역사, 요리)가 될 수도 있다. 관심사를 정했다면 그 관심 분야에서 하나의 문장을 만드는 방법으로 점점 범위를 좁혀본다. 범위를 좁히는 방법에도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심리학이라고 관심사를 정했다면, 심리학 중에서도 인지심리학, 발달심리학, 사회심리학 등 어떤 하위분야인지를 정하며 좁힐 수도 있고, 우울증이나 트라우마 같은 심리학에서 다루는 키워드로 좁힐 수도 있다.
관심 분야의 키워드로 검색을 해본다
이미 출간된 도서(내가 생각한 책이 이미 나와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부터 신문의 칼럼이나 연재물, 강연, 세미나 혹은 SNS 채널(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브런치), 논문 등 다양하게 검색을 하며 어떤 주제가 좋을지, 시장에서 빈 부분이 있는지, 책으로 낼 만한 콘텐츠가 있는지를 찾아본다. 그리고 아마존에서 검색을 해보는 것도 유용하다. 한국에 출간되지 않은 좋은 외서를 찾을 수도 있고, 출간된 외서에서 콘셉트나 주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기획 단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이 단계에서 기초적인 시장조사(이미 출간된 도서, 외서)와 저자 리스트, 출간할만한 좋은 콘텐츠를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띠지 카피(가제)를 먼저 떠올려본다
가제나 띠지 카피에 들어갈 문구는 콘셉트의 가장 강력한 역할을 한다. 좁혀진 키워드에서 내가 기획하고 싶은 책을 한마디로 설명해본다면 어떤 가제가 좋을지, 어떤 띠지 카피가 좋을지를 떠올려본다.
독자를 먼저 생각해본다
어떤 대상(타깃 독자)이 필요로 하는 책을 상상하면서 기획을 시작할 수도 있다.
2. 기획안 작성하기
기획안에 들어갈 내용은 크게 ‘가제(부제)/콘셉트/(예상) 저자/기획 의도/분야/타깃/유사도서/예상 사양/구성안(목차)/마케팅 방안’이다. 앞서 머릿속으로 떠올린 기획을 좀 더 명료한 문장으로 정리해가는 과정으로 부족한 내용이 있다면 다시 자료 조사를 하며 칸을 채운다.
기획안은 내 기획을 조금 더 구체화하는 문서이기도 하지만, 또한 회사 내에서 이 책이 출간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득하는 문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 몇 부나 팔릴 거 같은데?”라는 말이 사장들의 주요 대사인 이유가 있다. 시장의 관점에서 이 책이 얼마나 팔릴 수 있는지, 독자 니즈는 어떤지, 이 책을 냄으로써 출판사에 어떠한 이득이 있는지를 강조해서 서술한다.
3. 저자 섭외(출간 제안)
기획안이 (어찌어찌) 통과가 되었다면, 예상 저자에게 출간 제안을 한다. 보통은 이메일로 출간 제안을 하는 편이다. 컨택 메일에는 기본적으로 출판사 소개(관련 도서나 장점이 있다면 살짝 어필하는 것도 좋다), 출간 제안할 한 줄 콘셉트를 밝힌다. 메일에는 간단명료하게 “왜 이 책을 나에게 쓰라고 할까?” 제안을 받는 저자 입장에서 설득력 있게 작성하는 것이 좋다. 곧바로 기획안을 첨부하기보다는 출간 의사가 있는지 먼저 묻고, 미팅 요청을 하는 편이다.
4. 계약 조건 협의, 계약서 작성
저자가 (어찌어찌) 집필 제안을 승낙했다면, 계약 조건을 협의해야 한다. 회사 내에 표준계약서에 기반한 계약서 양식이 있다면 그걸 바탕으로 저자와 협의할 부분을 점검해서 논의하면 된다. 보통 인세, 인세 지급방식, 정산 시기, 증정 부수, 2차적 저작물, 해외수출 등 돈과 저작권에 관한 부분이다.
5. 원고 방향 협의 및 입고 관리
처음 작성한 기획안을 기초로 저자와 원고의 큰 방향성을 협의한다. 집필 일정을 대략 짜고 정해진 날짜에 원고가 안정적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다. 중간중간 피드백을 하거나, 집필 속도를 점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예 신문 칼럼이나 브런치 같은 연재를 잡아놓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6. 편집
최종 원고가 입고되기 전까지는 편집자가 컨트롤하기 어려운 영역이고 변수가 많기 때문에 대개 최종원고가 입고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편집에 들어간다.
최종원고 검토, 편집 계획안 작성
편집 계획안은 이 책을 어떻게 편집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문서이다. 문서 작성은 생략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과정은 필요하다.
크게는 원고의 상태는 편집에 들어갈 수 있는지, 교정자나 리라이팅 작가가 필요할지, 편집에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지, 그리고 PC 교정을 볼 때 어떠한 원칙으로 교정을 볼 것인지(출판사마다 나름의 기준이 정해져 있기도 하나, 때에 따라 추가로 고려할 사항들이 있다면 미리 공유) 등 내용이다.
편집 일정표 작성
편집 계획이 세워지면 그에 따른 일정표를 작성한다. 일정표는 마감일(주로 회사에서 정해주지만, 페이지 수나 작업량에 따라 작업 일을 1~2주 여유 있게 계산)에 맞추어 역순으로 계산한다. 편집/저자/디자인/마케팅의 항목을 각각 나누어 엑셀로 일정표를 짜면 보기 편하다.
외주자 섭외
회사 내부 디자이너와 작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필요에 따라서 리라이팅 작가, 교정자, 디자이너, 삽화가 등 외주 작업자를 섭외한다.
제작 사양 조사, 디자인 발주서 작성
디자이너에게는 디자인 발주서를 따로 작성해 보낸다. 디자인 발주서에는 제목/저자/타깃/판형/예상 페이지 수/디자인 방향/고려해야 할 점/표지, 본문 레퍼런스 등이 들어간다. 디자이너에게 발주를 의뢰하면 “본문 시안-조판-표지 시안-표지 결정-마감”의 순으로 편집 일정에 맞추어 디자인 일정도 진행된다.
편집 (PC교-1교-2교-3교-OK교)
디자인 작업과 동시에 편집이 들어간다. PC교부터 통상 3교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나 경우에 따라 줄거나 늘어날 수도 있다. 기간은 똑같은 것이 아니라 PC교와 1교가 가장 길고 점점 갈수록 짧아진다. 교정교열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준하여 맞춤법과 비문을 수정하고, 윤문이 필요한 경우 PC교의 경우 한글 메모 달기를 통해 저자가 어떻게 글이 고쳐졌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3교와 OK교 등 후반부로 가면 문장 하나하나보다는 숲을 본다는 느낌으로 마지막 오탈자를 잡고, 원고 부속물(페이지 수, 목차, 본문 디자인 요소)이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통일성이 빠진 것은 없는지를 전체적으로 체크한다.
7. 인쇄 감리
인쇄 감리는 디자이너가 가는 경우도 있지만, 편집자가 가는 경우도 많다. 별색이 있다면 별색칩으로 색상을 확인하고, 원하는 색상으로 잘 나올 수 있도록 조정한다. 다만 CMYK로 인쇄가 진행되기에 RGB 모니터 색상과 완전히 똑같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니 기장님과 소통하며 원하는 느낌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저자 얼굴에 붉은기가 심해서요 마젠타를 조금만 내리면 어떨까요?)
8. 보도자료 작성
보도자료는 각 매체의 기사들에게 보내지는 용도와 인터넷 서점에 책 소개, 출판사 서평란에 들어가는 용도로 쓰인다. 두 경우를 따로 나누어 작성하기도 하나 대개 하나의 보도자료를 작성한다. 보도자료에는 책 기본 사양/ 출판사 서평(책 소개)/저자 소개/목차/본문 발췌 등의 내용이 들어간다. 형식에 제약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인터뷰 형식이나, 편집자가 완전히 드러난 서평 등 다양한 글쓰기가 시도되는 곳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서점에서는 상세이미지로 책 소개를 하는 경우도 많기에 상세이미지 제작도 함께 진행한다.
9. 언론 릴리스 리스트 작성, 언론 릴리스 (기자 미팅)
보도자료를 작성했다면 책과 보도자료를 보낼 릴리스 리스트를 작성한다. 보통 여산통신이나 북피알에서 매체 리스트를 다운받아서 이 책에 관심을 가질만한 기자나 매체에 발송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따로 기자 미팅을 잡아 진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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