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기획] 공감을 이끄는 컨텐츠 기획하기
기획을 한다고 했을 때 종종 어떻게 할지 막막한 생각이 들곤합니다. 기획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우리를 어렵게 하는 걸까요? 기획은 '소통'입니다. 곧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적절한 형식에 실어 원하는 사람(타겟)에게 전달하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기획 의도를 설정하는 것이 항상 어려웠습니다. 정확하고 간결한 의도가 있다면 이를 표현해주는 수많은 방법들을 찾는 것은 오히려 쉬운 편에 속합니다. (물론, 적절한 형식을 설계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만) 먼저 '나는 왜 이 기획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명확히 한다면 이후의 상황들은 처음보다는 훨씬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획 의도는 앞서 말했던 소통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해당합니다. 이는 메세지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맨 처음의 기획 의도만 잘 설정해도 소통의 반은 성취한 셈입니다. 간단 명료한, 진정성 있는 기획 의도를 파악하여 그에 걸맞는 옷을 입혀주고 전달할 사람에게 전해주는 일. 자, 저는 이를 '공감을 이끄는 컨텐츠 만들기'라고 명명합니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를 하나 들까합니다. 모두의 공감을 사기 어려운(?) 개인적인 프로젝트 사례입니다. 제가 왜 이런 사례를 들고 왔을까요? 모두의 공감을 사기는 어렵지만 일부의 사람들에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프로젝트입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이고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을 겁니다. 그럼 몇가지만 숙지해 주세요.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1. 프로젝트의 배경 - 대학원 시각디자인학과 졸업 전시를 한 달을 남겨두고 준비 시간이 부족한 상황 - 등하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OO은 학교 건물에 살기로 결심 - 나는 OO이의 생존기를 밀착취재 하기로 결심
2. 프로젝트 이름 - 'OO의 두성(학교 건물 이름)생존기'
3. 프로젝트 기간 - 2주 4. 세부 내용 - 2주간 주말을 제외한 평일, 총 10회의 생존기록을 학교 인트라넷에 업로드한다. - 학교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툴(DOING-OBSERVATION-INSIGHT-NEXT DOING)을 기준으로 생존기록을 작성한다.
시각디자인학과에서는 밤샘이 빈번한 일이고 학교에서 생활하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을 학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사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보통은 2-3일에 한 번은 집에 다녀오지요. OO은 많은 일에 무던하고 무모한 도전을 해내는 친근하고 재밌는, 독특한 캐릭터였습니다. OO은 학교와 집이 왕복 4시간의 거리로 동떨어져 있었고 졸업 작품 준비는 미진했습니다. 그래서 학교 건물, 자신의 자리에서 근 한 달간을 숙식하며 작업에 매진할 요량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듣고 '재밌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요. 그리고는, 이를 기록하기로 다짐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저만의 재미 뿐만 아니라 주인공 OO, 그리고 졸업 준비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도 일상 속 소소한 재미를 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OO과 학교 건물, 학교 문화 등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재미로 다가갈 것이라 생각하면서요.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기획 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OO, 나, 졸업을 준비하는 과정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즐거움을 나눈다.
더하여, 두성집(학교 건물)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한다.
여기서 기획 의도의 몇가지 특징들이 드러납니다. 먼저 분명한 목적성입니다.
즐거움을 전하느냐, 정보를 전달하느냐 하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개인적인 감상이 아니어야 합니다. 프로젝트는 나만 즐겁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즐거움을 전달해야 공개적인 자리에서 발언할 수 있겠지요. 위의 예시에서는 학교 사람들(타겟)이 OO가 독특하고 재밌는 캐릭터라는 것을 알았고, 졸업 전시가 얼마나 많은 중압감을 주는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학교에서 중압감을 이겨내는 행위들에 관심을 갖고 즐거워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학교 건물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 숙식을 해결하기에 좋지 않은데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증을 갖기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생존기를 충실히 기록한다면, 이후에 같은 건물을 사용할 사람에게도 건물의 사용 방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공적인 성격을 띕니다. 마지막으로는 분명한 타겟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아무런 맥락 없이 저의 초등학교 동창들에게 얘기했더라면 과연 친구들은 즐거워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타겟 설정은 굳이 가시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엉뚱하게 타겟을 설정할 때도 있고 받아들이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한 타겟을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학교 문화와 학교 건물과 OO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들, 곧 학교 안 학생들로 타겟의 범위를 좁혀 즐거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분명한 기획 의도를 설정한 후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워집니다.
즐거움과 정보를(왜) OO의 생존기(무엇을)를 통해 보여준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할(혹은 보여줄) 것인가?'는 즐거움과 정보라는 특징에 맞춰 선택하면 됩니다. 우선 저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건물 안에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카테고라이징 했습니다. 수면, 식사, 세면, 운동, 작업, 취미활동 등으로 하루마다 한 개씩의 주제를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정보로 전달하고 작은 책자로 남기고 싶어서 '글'의 형식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학교 내에서 어떤 행동을 할 때 사용하는 프레임워크를 사용하여 정리했는데, 오늘 '한 행동(사실) - 관찰(보여지는 특이점) - 느낌과 통찰 - 다음 행동'의 순서대로 OO의 일상을 기록하였습니다.
*** 밑에는 포스팅 내용에 맞는, 실제 생활하고 있는 사진을 첨부했습니다. 초상권을 위해 사진들을 생략합니다. 두성생존기를 브랜딩하는 시각적인 요소로 바나나와 키위가 천장에 달려 있는 모습들을 계속해서 보여줬습니다. 바나나와 키위의 갯수가 바뀌는 것은 생존이 지속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속해서 바나나와 키위를 먹고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갯수가 줄어들면 근처에서 장을 봐 채워놓습니다.
즐거움은 '말투'를 이용했습니다.
한 예로 10회 중 연재를 깜빡 잊고 6, 7화를 동시에 업로드할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나몰라패밀리 고장환의 동영상이 유행을 했습니다. '모루겟서여 진샤(모르겠어요 진짜)'라는 유행어로 큰 인기를 얻은 동영상인데, 처음 동영상 시작에 '진챠 간만에 챠자뵙게 되어(진짜 오래간만에 찾아뵙게 되어)'라는 멘트로 시작합니다. 저는 이를 차용해 한 회를 넘겨서 정말 오랜만에 찾아왔다는 의미로 6, 7화의 말투는 모두 이 '모루겟서요 진샤'라는 말투로 표현했습니다. 물론, 저희 또래의 타겟이 충분히 이해할만한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서 약간의 무리를 두고 사용한 예입니다.
기획이라는 벽에 부딪힐 때 먼저 '왜' 이 기획을 하는가를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세요.
그 답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 사실, 감정 등이며 타겟을 생각하고 그들도 이해하거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후에는 그 의도를 잘 전달할 수 있는 형식들을 선택하세요. 객관적인 정보 전달이 의도라면 그에 맞는 사실에 기반한 글쓰기 형식을 가져오거나 감성의 전달이라면 시나 수필의 글쓰기 형식을 빌려올 수도 있을 겁니다. 꼭 글이 아니라 만화나 동영상 등 여러 매체들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기획에 대한 여러분들의 감을 믿으세요.
'재밌겠다'하는 생각이 있다면 일단 무엇이라도 저지르고 봅시다. 이런 감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니에요. 잘 된 기획이라는 말에 주눅들지 맙시다. 말이 안되고 어색하고 억지스러울지 몰라도 꾸준히 기획하고 실행하다보면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실은 제가 제게 하는 말입니다. 저, 두 달 사이에 졸업전시를 기획해야 한다고요. 아무래도 제 자신의 두성생존기를 기록해야 할 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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